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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화상선요서


참선은 비록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며 닦아 증득함에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써 종지를 삼으나 이미 참구할 수 있다면 반드시 요긴함이 있을 것이다. 
요긴함이란 무엇인가? 
마치 그물에 벼리가 있는 것과 같고 옷에 옷깃이 있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 듦으로서 지름길로 곧장 완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수많은 그물코가 그물 아닌 것은 아니지만 벼리는 버려두고 그물코만 들면 그물은 반드시 펼쳐지지 않을 것이요, 
수많은 실올이 옷 아닌 것은 아니지만 옷깃은 버려두고 실올만 들면 옷은 반드시 들려지지 않을 것이다. 

영가선사가 이르기를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짓은 나는 하지 않겠다」 하였다.
가지와 잎은 요긴한 것이 아니요 뿌리의 밑둥이 진실로 요긴한 것인데 
배우는 자들은 다시 그 뿌리의 밑둥에 대해서 어두울 뿐이다. 

아호선사가 이르기를 「요긴함은 당사자가 잘 선택하는데 있다」 하였으니 
바른 길을 선택하여 좇아야 될 것이거늘, 배우는 자들은 항상 출발하는 자리에서 결정과 선택이 어긋난다. 
결국 월나라로 가려 하면서도 수레는 북쪽으로 몰고 가는 셈이다. 
나아가서는 예로부터 조사들이 남긴 저술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 이야기 한 토막 말 한 마디가 참으로 강령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말세의 수렁으로 떨어지고 성인과는 점차 멀어지니 망정과 거짓이 날로 불어나 마음(心)과 뜻(意)과 인식(識)이 좀먹어 들어가서 
벼리와 옷깃을 보고 그물코와 실올로 여기는 자가 허다하니 어찌하겠는가.

우리 스님 고봉화상께서 쌍봉으로부터 서봉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이것을 염두에 두셨다. 
그러므로 부득이 사람들에게 긴요하고도 확실하게 보여주시니, 
마치 신비스런 약은 한 숫갈로도 죽을 사람을 회생시키고 
영험한 부적은 한 점 한 획으로도 삿된 귀신을 몰아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신기한 처방과 비밀스런 주문을 채록하여 배우는 이들에게 강령이 되게 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짐승을 잡는 것은 그물눈이지 벼리가 아니며 
추위를 막는 것은 실올이지 옷깃이 아니니, 
8만4천의 법문은 문문마다 모두 들어갈 수 있듯이 
그물눈과 실올이 과연 요긴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말한다. 
「세존의 법문은 참으로 광대하고도 무변하지만 
돌아보면 이에 방편으로 협소한 하나의 문을 설치하여 
뭇 아이들로 하여금 불난 집에서 벗어나 대승으로 들어가게 하시니, 
이는 그물눈과 실올을 거두어 강령을 삼은 것일 뿐이다」
 그러한 즉 벼리인가, 그물코인가, 
옷깃인가, 실올인가,
 요긴한가, 요긴하지 않은가는 
정수리 위의 바른 눈을 갖추지 못했다면 쉽사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서봉선사의 법석에 참여한 이래 
매번 대중들에게 열어 보인 법어 가운데 참구하고 결택함에 간절한 것들을 베껴 모아서 
<선요>라 이름하고 오래도록 뜻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고소산의 영중 스님에게 얘기하였더니 흔연히 반연을 모아 판각하고자 하고는 또한 나에게 서문을 쓰라 하였다. 
내가 이미 분부를 승낙하고는 다시 말씀드렸다.
「스님에게는 따로이 한 마디 요긴한 말씀이 강령밖에 있어서 
허공의 뼈 가운데 감춰져 있으니, 
형께서 판각하려 하고 내가 서문을 쓰고자 하여도 모두 가능치 않으니 
오히려 다른 날에 다시 한 번 드러나기를 기다리도록 하자」라고 하였다.

지원 갑오년 9월 9일, 천목산의 참선학도  직옹 홍교조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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